▶ 장준우가 만난 셰프들
▶ 고력당 최유성 셰프
▶ ‘와, 염소가 이런 맛이었어?’ 하실 때 정말 뿌듯해요
취향을 바꾸는 일보다 어려운 게 있다. 바로 선입견을 깨부수는 일이다. 막상 경험해보면 해소될 수 있지만 선입견이 경험 자체를 가로막는 경우가 보통이다. 염소 고기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다. 염소 고기를 먹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사람도 은연중에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떠올린다. 염소 하면 왜인지 흰 염소보다 흑염소를, 중탕이라는 고루한 이미지와 한약 냄새를 연상하는 탓이다. 파도처럼 쉬지 않고 찾아오는 선입견과 편견에 맞서 8년째 묵묵히 염소를 이용한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 있다. 전남 순천에 위치한 '고력당'이다. 개 식용 종식법 제정 이후 보양식의 대체재로 염소가 각광받으면서 염소 요리 전문점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와중에 독보적인 존재감을 내비치는 곳이다. 대부분 냉동 수입산을 사용하는 데 반해 한국산 염소를 구이로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식당 중 하나다.
■ 아버지가 기른 염소, 아들이 요리하다“어떠세요, 냄새 안 나죠?" 노릇하게 구워진 염소 갈비를 입에 넣자 최유성(37) 고력당 셰프가 자신 있게 물었다. 예상했던 특유의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소갈비와 양갈비 중간 어디쯤의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육즙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낯선 듯하면서도 익숙한 맛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점 더 집어 먹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냄새가 나는 이유는 먹이 때문이죠. 일정한 사료만 먹이면 냄새가 나지 않아요. 오히려 방목해서 잡풀을 뜯어먹으면 잡냄새가 납니다." 최 셰프가 운영하는 고력당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전남 보성의 염소 농장에서 키운 염소를 사용한다. 생산부터 가공, 요리까지 일원화된 시스템을 갖춘 곳은 흔치 않다.
최 셰프는 2014년 ROTC 특전사 중위로 군 복무를 마친 후 진로를 고민하다 염소 농장에서 아버지를 돕기 시작했다. “농장에 800마리가 있는데 마땅히 팔 곳이 없었어요. 키우기만 하고 적자만 늘어갔죠." 답답한 마음에 수요를 직접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식당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일단 배워보자는 생각에 무작정 이력서를 넣어 들어간 곳은 양고기로 유명한 음식점 이치류였다. 그곳에서 고기를 다루는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익힌 그는 2017년 자신만만하게 고력당을 오픈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양과 염소의 특성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 돌고 돌아 보양식으로“염소 고기에 대한 인식을 보란 듯이 바꾸고 싶었는데 너무 준비가 안 됐다는 걸 깨달아버린 거죠." 염소는 양에 비해 육질이 단단해서 구이용으로 내놓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창업하고 3년간 실험이 계속됐다. 여러 방식으로 숙성도 해보고 한식, 양식, 일식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조리 방식을 적용하며 가능성을 탐색했다. “염소 소시지도 만들어보고, 샤부샤부도 해보고, 마라도 넣어보고 안 해본 게 없었죠."
해답은 의외의 곳에서 찾았다. “결국 우리 문화 안에 답이 있더라고요. 보양식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니까 오히려 길이 보였어요." 멋지고 화려한 요리를 통해 염소 고기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귀하고 건강한 음식을 대접받고 맛보고 싶은 고객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한국산 약용 흑염소 전문점'을 내걸고 미식과 보양식의 경계에서 고력당만의 자리를 잡았다.
메뉴는 크게 구이, 불고기, 탕, 전골이다. 갈비구이는 양갈비처럼 정형해 구워내고 불고기는 다리살을 얇게 저며 야키니쿠 스타일로 먹기 직전에 양념한다. 탕은 염소 사골 국물로 만든 백탕과 홍탕 두 가지다. 기존 염소탕의 무겁고 녹진한 스타일에서 벗어나 경쾌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추구한다. 탕에 들어간 고기는 일반 염소탕집처럼 오래 삶아 손으로 찢어내는 방식이 아닌, 고기의 맛과 질감을 살리기 위해 3시간 반 정도 삶은 수육을 얇게 썰어 얹어낸다. “보양식이라고 무조건 오래 끓여서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먹기도 좋지만 보기 좋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 설 자리 없어지는 토종 흑염소
염소 고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만큼 산업의 미래도 밝을까. 최 셰프는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앞으로 풀어갈 숙제가 여전히 많다고 했다. 우선은 품질 문제다. “순수한 토종 흑염소는 이미 10년 전에도 씨가 마르다시피 했어요. 지금 유통되는 건 대부분 호주 보어종과의 교잡종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토종 흑염소는 몸집도 작고 빨리 크지 않아 육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1990년대 후반 빨리 크고 수율이 높은 호주산 보어종 염소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농가들은 무분별하게 토종 흑염소와 교잡시켰다. 소나 돼지처럼 산업이 크지 않아 관련 법규나 규제가 없다시피 한 까닭이다. 2010년대부터 순혈 흑염소는 급격히 줄고 보어종 혈통을 이어받은 염소들이 주류를 차지했는데 이들도 국산 흑염소란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다. 농가에서도 주먹구구식으로 사육하다 보니 한국산 염소육의 품질이 일관되지 않다고 최 셰프는 지적한다.
거세게 밀어닥치는 수입산의 파고도 문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염소 고기 자급률은 37.7%까지 떨어졌다. 2019년 77.3%에서 불과 4년 만의 급락이다. 반면 수입량은 2015년 1,570톤에서 2024년 8,143톤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산은 kg당 3만, 4만 원인데 수입산은 1만 원대예요. 가격 경쟁력에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구조죠."
염소는 소, 돼지, 닭, 오리 등 4대 축종에서 제외되어 있다. 자조금도, 체계적인 지원도 없다. “염소 산업은 완전한 사각지대예요. 보양식 대체재로 주목받고는 있지만 정작 수혜는 국내 농가가 아니라 수입 업체들이 다 가져간 상황입니다." 물론 수입산이라고 반드시 한국산보다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한국산보다 품질이 편차 없이 안정되게 공급된다는 점은 장점. 그러나 전량 냉동으로 들어오다 보니 냉장 유통되는 한국산보다는 활용에 한계가 있다.
■ 한국산 염소 구이, 맛보면 생각 달라질걸요?“구이는 확실히 국산이 맛에서 경쟁력이 있어요. 사람들이 꼭 한국산 염소 구이를 맛보고 선입견이나 편견을 내려놓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계속 의병처럼 혼자 싸우는 느낌이지만 누군가는 이 길을 가야죠."
고력당은 이제 꾸준한 단골층이 생겼다. “법원 근처다 보니 검사, 변호사님들이 전근 가실 때 인사하러 오시죠. ‘여기서 5년 있었는데 갑니다' 하시면서요." 젊은 층 손님도 늘어나는 추세다. “제가 기획하고 구성한 게 손님 의도대로 맞아떨어질 때, 그때가 가장 보람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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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우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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