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여 년간 전 세계는 한류 열풍에 뜨겁게 반응해왔다. K팝의 폭발적인 성공, 눈물과 웃음을 선사한 K드라마의 감동적인 서사, 그리고 K뷰티·K푸드의 매력까지, 한국 문화는 이제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세계적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특히 K-BBQ와 같은 음식 문화는 완벽하게 현지화에 성공하며, 뉴욕·파리·도쿄와 같은 글로벌 대도시는 물론, 이제는 작은 지방 도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확산되었다. 한국 문화가 더 이상 낯선 이국의 트렌드가 아닌, 전 세계인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다.
이 흐름이 더욱 놀라운 이유는 불과 75년 전, 한국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나라는 폐허가 되었고 국민들은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이 불과 한 세대 만에 눈부신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루고, 이제는 전 세계인의 문화적 영감을 제공하는 국가가 되었다는 점은 경이롭다. 한류는 단순한 문화 수출이 아니라, 한 나라가 어떻게 절망을 딛고 일어나 세계의 무대에서 자신을 당당히 표현하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이는 대한민국이 이룩한 기적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은 세계사적으로도 드문 사례로, 한국 문화의 성취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최근 들어 또 하나의 흥미로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사람들은 단순히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한류 콘텐츠를 즐기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 관심은 점점 더 깊어져, 한국의 뿌리로 향하고 있다. 한국어를 배우고, 예절과 의례를 익히며, 전통 생활 방식과 정신적 가치까지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무엇보다 문화예술을 직접 배우고 체험하려는 시도가 전 세계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한국전통예술은 이러한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역이다. 10~20년 전만 해도 재미동포 2세들이 한국 무용을 배우는 이유는 단순했다. 대개는 어머니의 권유, 혹은 ‘한국인이라면 해야 한다’는 당위에서 시작되었고, 무용 수업은 즐거움보다는 의무에 가까웠다. 아이들에게 무대는 설렘보다는 부담의 공간이었고, 그 경험이 끝난 뒤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오늘날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젊은 세대의 한국계 미국인들은 더 이상 전통예술을 억지로 하지 않는다.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몰입한다. 한국 무용을 통해 정체성과 자부심을 확인하고, 자신의 뿌리를 몸으로 기억하며 표현한다. 무대에서 펼치는 춤사위는 단순한 동작이 아닌 하나의 언어가 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세계에 말하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변화가 한국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비(非)한국인들도 K팝과 드라마 소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한국 무용을 배우고,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국악을 공부한다. 한때는 화려한 아이돌 무대가 한국 문화를 대표했다면, 이제는 깊이와 사색을 담은 전통예술이 새로운 호기심과 매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여러 한국전통예술단에서는 한국인이 아닌 단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그들은 낯선 문화의 뿌리를 배워가는 과정에서 특별한 성취감과 감동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문화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진정한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한류가 지난 20년간 세계인의 눈앞에 한국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면, 이제는 세계인들이 그 문 안으로 직접 들어와 한국의 심장부와 뿌리를 찾는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대중문화의 파급력이 씨앗을 뿌렸다면, 전통문화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그 씨앗이 튼튼히 자라도록 지탱하는 비옥한 토양이 될 것이다. 이렇게 뿌리 깊은 관심은 앞으로의 한류가 단순한 열풍이 아닌 지속 가능한 문화적 흐름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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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화 김응화 무용연구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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