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학교 친구는 같이 자랐기에 속속들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카톡으로 멀리 떨어져 한국, 영국, 미국에 있어도 뭘 하는지 훤하다.
교사친구들은 은퇴연금으로 즐기고, 젊은 날 남편과 함께 했던 회사 동료들도 할아버지가 되어 손주들 시집살이를 견디며 살아간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은 조의금을 받아간 친구는 없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지만 아직도 한국 친구들은 그립고 정겹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느닷없이 다음날 눈 뜨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에 서글프지만 동감하면서, 그러려면 내 주변을 평소에도 정리 정돈을 잘 해야함에 동감했다.
아주 오랫만에 우리 집에 미국 친구들이 왔다 갔다. 나이가 들어 미국으로 이민 온 뒤에 만난 이곳 친구는 여러 종류가 있다. 친구가 있어도 처음엔 자리 잡을 때까지는 생활이 빠듯해서 초대를 할 수 없었다.
3년 뒤에 우리 집이 생기고 숨통이 조금 트였다. 나의 원칙은 남편 생일에만 원하는 만큼 요일을 다르게 우리 집에서 상을 차린다. 나머지 중요한 날은 내가 원하는대로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미국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한국인 중에는 노총각도 있고 고만고만한 아이들까지 모이면 스무명이 넘었다.
미국은 소고기가 싸다며 갈비찜, 잡채, 온갖 부침개, 겉절이, 나물, 과일을 한 냄비씩 만들어도 텅텅 빈다. 오랫만에 한국말로 그동안 한풀이를 하며 이놈 저놈 미국 동료들을 한국말로 욕하며 노래방까지 즐긴다.
다음날은 비슷한 달에 한 아파트에 모여 살게된 이민 동기 가족들이다. 전기, 자동차, 메트로, 미용실 직업은 다르지만 나이도 비슷하고 아이들도 비슷한 또래이니 16명이다. 5년 정도가 지나니 같은 동네 가족모임까지 생겨서 삼복 더위에 막내 아들 낳은 시어머니 흉을 보며 십년은 넘게 지지고 볶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십년이 넘으니 흰머리가 되어 제각각 이리저리 헤어져서 자기 일을 한다.
이제는 회사 동료들은 선선한 가을날 피크닉공원에서 바베큐를 하면서 만나고 모두들 내년에도 꼭 만나자고 약속하지만 큰 수술을 받은 이가 많고 건강이 염려되니 우리에게 정해진 내일은 없다. 오랫만에 모인 이민 동기들도 모두들 근처에 살면서도 자주 만나지를 못했다. 예전에는 남편들 생일 핑계로 네번은 만나서 각자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친하게 지냈는데 지금은 무릎, 디스크, 머리, 손떨림을 지니고 산다.
그리도 먹성 좋고 힘 세던 돌쇠 아저씨는 앙상하게 말라서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강아지와 셋이서 산책을 한다기에 좋아하던 음식을 싸주는 내 마음을 아프게한다. 한국 지하철과 미국 메트로를 누비면서도 땀을 흘리지 않았던 조용한 친구가 얼마전 다녀온 한국의 늦더위에 땀흘며 정말 힘들었다고하니 모두들 여름엔 한국을 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나마 남동생과 남편은 아직도 건강하게 직장에 다니지만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남편은 자신이 잔디를 깎을 수 있고, 내가 음식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만 초대한다기에 그려! 잔디는 돈 주고 깎고 음식은 캐더링에 맞추면 된다고 기죽지말고 슬퍼하지 말라고 다독이며 큰소리쳤지만 이틀 몸살이 나니 힘센 나도 한물갔다.
그러나, 무엇이든 줄어들면 채워지기 마련이다. 그동안 우리 집안도 조카들이 짝을 찾아 가지치기를 하여 12명 대가족이 되었다. 계단막이 사이로 빠질 뻔하던 애기들은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 4명이 모두 학생이 되어 예의 바르게 배꼽인사를 하기는 한다.
한글학교 최우수 교사였던 할머니가 부끄럽게 집에선 한국어를 쓰라는데도 영어로 시끄럽게 떠들고 소리나는대로 엉망진창으로 쓴 손편지 카드를 끊임없이 보내고 느닷없이 영어로 카톡을 날려온다. 애들은 오면 반갑고 가면 고맙다는 진리를 깨달으며 떠나는 차에 마구마구 손 뽀뽀를 날린다.
여름은 지났으니 땡스기빙에나 만나겠지 하다가, 아이구 다음달에 성당 구역 모임을 우리 집에서 한다고 했는데 나물 하나씩 들고오는 비빔밥 모임이지만 지난번 모임 때 히트 친 삼겹살 불판에 기죽을 수 없으니 우리는 뭘하나? 보쌈, 감자탕, 닭갈비, 추석이 있으니 송편? 녹두전? 아이고 난 모르겠다! 그냥 모두 다 같이 골덴캐롤 부페나 가면 편할텐데….
이럴 때 느닷없이 떠오르는 김동환의 시(웃은 죄)~~~지름길 묻기에 대답했지요 / 물 한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 주고 / 그러고는 인사하기에 웃고 받았지요 / 평양성에 해 안뜬대두 / 난 모르오 웃은 죄 밖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