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1기 때 무역수지 개선 불구
▶ 상장기업·가계 수익은 오히려 악화
▶ 인플레이션 등 상황도 녹록지 않아
▶ 중과 일방적 단절 땐 공멸 우려도
▶ 중 “희토류 등 통제” 강력 반발 속
▶ 농산물 수입 등 적정선 수용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국부펀드 설립을 비롯한 여러 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로이터]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크든 작든 전 세계의 경제와 외교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외 수출 의존도가 높고 한반도 리스크까지 안고 있는 우리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더 클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출범한 뒤 본격적인 미중 갈등의 예고편이 이른바 ‘관세전쟁’의 형태로 현실화했다. 우리는 미국은 물론 중국과도 경제·외교안보·국방·경제·정치·사회·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엮여 있다. 미중 갈등의 폭과 수위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유다. 트럼프가 캐나다·멕시코·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를 공식화하자마자 코스피는 2.5% 넘게 급락했다.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의 ‘사법 리스크’ 탈피, 카카오와 오픈AI 협력 발표 등 대형 호재도 힘을 쓰지 못했다.
▲독해진 트럼프의 전략은 ‘디커플링’(?)트럼프는 멕시코·캐나다에 대한 관세 부과는 한 달간 유예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10% 추가관세 부과는 예정대로 4일(현지시간)부터 발효시켰다. 중국은 곧바로 보복관세 부과와 함께 희토류 수출 제한 및 구글 반독점 조사 카드를 꺼냈다. 그러자 미국 연방우정청(USPS)은 중국·홍콩발 소포 접수를 거부하고 나섰고, 중국 외교부는 “필요한 조치”를 예고했다.
트럼프는 1기 재임 2년 차이던 2018년 7월 34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상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며 관세전쟁을 시작했다. 중국은 즉각 같은 수준의 보복관세로 맞섰다. 양국 간 최대 25% ‘관세폭탄’ 주고받기는 이듬해까지 4차례에 걸쳐 3,600억 달러 규모로 확대됐다가 2020년 1월 1단계 무역협정 협상 타결로 일단락됐다.
트럼프 1기의 관세전쟁이 소기의 성과를 거뒀는지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전반적으로는 대중 무역수지가 개선됐지만, 멕시코·베트남 등의 무역수지 적자폭 확대가 중국산 제품의 우회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는 트럼프가 멕시코를 2기 출범 이후 첫 관세 부과 대상국 중 하나로 거론한 이유이기도 하다.
관세전쟁을 재개한 트럼프의 기세는 6년 전과 사뭇 다르다. 일찌감치 대중 강경파로 진용을 갖췄고, ‘펜타닐’ 문제로 명분을 축적하더니 취임 12일 만에 첫 관세 부과를 공식화했다. 대미 경제 의존도가 높고 정치적 상징성도 큰 접경국들을 중국과 함께 묶음으로써 관세를 협상력 극대화의 무기로 활용하겠다는 메시지와 동시에 ‘중국은 다르게 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가 경제·기술·공급망 등에서 중국과의 전략적 결별(디커플링)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율관세 부과와 리쇼어링 및 공급망 재편, 중국 기술기업(화웨이·ZTE) 제재 등으로 일관했던 1기 때보다 정교하게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핵심 기술과 전략적 물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되 다른 분야에서는 협력하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의 디리스킹(위험 축소) 전략을 뒤집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중국과 공개적인 협상 없이 관세 부과를 강행했다. 관세 문제는 결국 리쇼어링을 포함한 미국의 제조업 부흥과 공급망 재편, 반도체·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한 핵심 기술분야 이너서클 구축 등과 맞물려 있다. 트럼프의 관련정책 기조를 감안하면 선택지에서 중국과의 협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커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중국의 반격도 이전보다 더 거세진다하지만 중국의 반격도 트럼프 1기에 비해 거셀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성장 둔화로 인해 추가 양보의 여유가 별로 없다. 정치적으로는 2030세대의 맹목적 애국주의가 상처를 입을 경우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는 것과도 궤를 같이한다.
중국은 대미 수출 비중을 꽤 줄인 상태다. 2018, 2019년 관세전쟁을 거치며 20% 안팎에서 16~17% 수준으로 하락했고,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예외적인 일시 증가 이후 2021~2023년에는 14~15%로 좀 더 떨어졌다. 미국이 공급망을 다각화하고 동남아시아 및 인도 등으로부터 수입을 늘린 만큼 중국도 동남아시아·유럽·아프리카 시장의 비중을 높였다.
중국은 관세전쟁을 무역 문제를 넘어선 첨단기술과 안보, 지정학적 리더십 문제라고 보고 있다. 반도체와 AI 분야 등에서 기술 자립화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중국 국내파 엔지니어들이 주축이 된 ‘딥시크 열풍’이 단적인 사례다. 핵심이익으로 규정한 대만 문제에서 강경일변도인 것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미국 국채 매각과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가 엄포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 국채 보유 비중을 줄이고 있다지만 여전히 그 규모는 8,000억 달러에 육박한다. 또 전 세계 주요 희토류 생산의 90%를 점하고 있다.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는 “우리도 부담이 크지만, 퇴로가 여의치 않을 경우 결단할 가능성이 이전보다 확실히 높아졌다”고 했다.
애플이나 테슬라, 퀄컴 등 미국 첨단기술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나 활동 제한 카드도 있다. 중국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관세전쟁 대상으로 지목된 유럽연합(EU)과의 공조를 촉구하고 있다.
▲미·중,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사이사실 관세전쟁이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건 내부 통계로도 확인된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5일(현지시간)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1기 관세전쟁 당시 중국과의 무역 이슈에 노출된 상장기업들의 수익률은 평균보다 13%나 낮았다. 같은 기간에 가계 수익도 3% 악화했다. 대중 무역수지가 일부 개선됐지만 전체 무역수지는 오히려 악화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공산이 크다. 6년 전과 달리 인플레이션 우려가 여전한 상황에서 수입물가 상승은 당장의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했다가 전반적인 교역량 하락 및 소비 침체와 맞물려 디플레이션으로 현실화할 수 있다.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마냥 밀어붙이기엔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이다.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의 대규모 추가 수입, 미국 내 생산공장 건설 등 트럼프의 요구를 적정한 선에서 수용하는 상황도 가능하다. 최근 중국 매체들은 글로벌 전기차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인 CATL의 미국 공장 건설 가능성을 전했다.
중국은 냉전 시기 소련과 달리 미국과 경제적으로 깊이 연결돼 있다. USPS가 중국발 소포 접수 금지 조치를 하루 만에 번복한 건 미국 소비자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은 미중관계를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단절을 시도하면 공멸할 수 있다는 상호확증경제파괴(MAED)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관세전쟁은 결국 기술 및 전략적 경쟁의 한 축이어서 정치적 역량과 경제 상황에 따라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사이 어딘가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일방적인 게임일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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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대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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