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위에서 누군가가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암은 점점 불치병의 영역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암을 이겨내고 있다. 이에 본보는 암에 걸렸다가 완치 판정을 받은 두 명의 워싱턴 한인들을 만나 그들이 어떻게 암을 극복했는지, 어떻게 치료를 받았으며, 암 진단 전과 진단 후의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들어봤다.
곽노은 씨가 암 완치 판정을 받은 후 지난 2024년 4월 포르투갈의 ‘기마랑이스’라는 도시를 부인 곽복실 씨와 함께 활기차게 걷고 있다.
▲“암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두려워할 대상 아냐”
간암 이겨낸 70대 곽노은 씨(폴스처치, VA)
곽노은 씨(71세)는 “암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두려워할 대상은 아니다”면서 “적극적인 암 치료로 모든 암은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환자가 정신적으로 무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무서워할 필요는 전혀 없고, 편안한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곽 씨는 64세가 되던 2017년, 자신의 지병인 간경화가 간암으로 발전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의사로부터 전해 들었다. 간암 판정은 버지니아 페어팩스 소재 이노바 병원에서 받았다고 한다. 그는 “아버님이 68세에 간암으로 돌아가셨기에 간암으로 발전했다는 이야기를 의사로부터 들었을 때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곽 씨는 65세였던 2018년 10월 18일 새벽, 조지타운대학병원에서 6시간 이상 간이식 수술을 받았고, 수술한 지 5년 만인 2023년, 70세가 되던 해에 담당 의사로부터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는 “수술 후 1년에 두 번씩, 6개월 간격으로 CT(컴퓨터 단층 촬영)와 MRI(자기공명영상) 검사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곽 씨는 “암에 걸린다는 것은 절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약도 많이 나오고, 의료 기술도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워싱턴 지역에 살아서 간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미국 내 간이식 병원으로 손꼽히는 조지타운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기에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간이식은 간단하지 않다”면서 “나의 경우에는 수술을 받기 위해 조지타운대학 병원을 7번이나 가서 수술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간은 보통 뉴욕이나 시카고에서 항공을 통해서 오는데 이식을 받는 환자와 간을 기증한 사람이 맞아야 되기에 수차례의 시도 끝에 간을 이식받았다고 한다.
그는 “6번은 헛탕을 쳤지만 7번째 성공한 것”이라면서 “4번째는 수술 동의 사인을 한 후 의사가 간이 동성연애자의 것이라고 해서 사인을 취소했다. 사실 받아도 상관이 없지만 그때는 동성연애자의 간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사인을 받은 것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메디케어 서플리먼트 혜택을 제대로 활용한 경험을 공유하며, 만성 질환이 있는 한인들에게 서플리먼트 가입을 권장했다. 곽 씨는 “저는 64세에 간암 판정을 받았고, 1년 뒤에 수술을 받았는데, 그때 메디케어 혜택과 특히 서플리먼트 보험 덕분에 수술비 46만 달러가 전액 커버되었다”고 말했다. 서플리먼트는 65세 메디케어에 처음 가입할 때는 신체검사 없이 가입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신체검사를 받고 어느 정도 몸이 건강해야 가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더불어 곽 씨는 52세에 우드만 라이프의 암보험에 가입했는데, 암 진단을 받은 후 5만 달러의 보험금을 받아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유럽 여행 전문가로 무역업에 종사하던 그는 2023년 암 완치 판정을 받고, 그해 12월에 생업에서 은퇴했다. 지금은 여행 칼럼을 쓰고 강의를 하며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그는 “1년에 10번 이상 워싱턴 여성회를 포함한 각종 모임에서 여행에 대해 강의하고 있으며, 회원 수 1,200명인 워싱턴 복지상조회에서도 봉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가방 비즈니스에 종사했는데 40세부터 사업상 이탈리아를 1년에 2-3번씩 방문하면서 인근의 다른 나라도 방문하면서 유럽 여행 전문가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 그는 2남 2녀와 손주 3명이 있으며, 건강한 삶을 위해 아침과 저녁으로 50-60파운드 역기를 이용해 근력을 키우고, 매일 40분씩 부인과 함께 산책을 한다. 또한, 간이식을 받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하기에, 당뇨 수치를 조절하기 위한 약을 포함해 여러 가지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약을 먹는 것이 불편할 수 있지만, 이것도 받아들이면 괜찮다”면서 자신의 건강 관리법을 공유했다.
윤영진 씨가 암 완치 판정을 받은 후 남편 Virgil Yauger 씨와 함께 2024년 2월 뉴 멕시코에 위치한 칼스배드 캐번스(Carlsbad Caverns) 내셔널 파크를 여행하고 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신앙이 큰 도움 됐어요”
폐암 4기 이겨낸 60대 윤영진 씨(웃브리지, VA)
윤영진 씨(66세)는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암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면서 “암이 나쁜 것은 알지만 암에 걸리니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 면에서는 암은 저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고 말했다.
윤 씨는 “당시 나는 모든 사람은 다 죽는데… 조금 일찍 가는 것뿐이지라고 생각해 울지 않았고 웃었으며 왜 나에게 암을 겪게 하냐며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다”면서 “하나님이 오라면 가는 거고 하나님이 이 세상에 조금 더 있다가 오라고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생각 자체가 암 극복에 큰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남편이 미군 출신인 윤 씨는 2019년 12월 31일 버지니아 포트 벨보어 육군 병원에서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윤 씨는 2019년 11월 추수감사절 때 아들네에 갔다가 오른쪽 가슴이 아파서 병원에 갔고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 한 달 후에 암 판정을 받았다. 가족력도 없었는데 어떻게 암에 걸렸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고 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폐에 레몬사이즈의 암이 발견됐고 임파선과 뇌에도 전이가 됐었다”면서 “뇌에는 혹 덩어리가 4개나 발견됐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암 판정을 받았을 때 그녀의 나이는 환갑이 조금 지난 61세였다.
암을 진단 받기 전에는 여느 한국 사람처럼 열심히 일을 했고 나이가 들어 아들네와 딸네를 왔다 갔다 하면서 손주들을 돌보는 재미로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교회도 열심히 다녔다고한다.
윤 씨는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남편과 자식(아들 2명, 딸 1명)은 정말 많이 울었는데 정작 저는 울음이 안 나왔고 울지 않았다”면서 “남편은 군대에서 29년간 근무하고 당시 고위직 연방 공무원(GS 14)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제 간호를 위해 퇴직을 했다”고 말했다.
윤 씨는 1년 반 가량 방사선 치료와 약물 치료를 병행했다. 폐암 4기라서 수술은 하지 않았다. 2021년 7월 암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의사의 말을 들을 때까지 병원을 수없이 갔고 가끔은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당시 남편이 항상 함께 했고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윤 씨는 “암이 4기인데다가 전이가 돼서 수술을 못하고 먼저 종양이 발견된 뇌에 대해 방사선 치료를 한 후 폐에 대해 방사선 치료를 30번이나 받았고 키모를 4번이나 했으며 임핀지(Imfinzi)라는 면역 항암제를 2주에 한 번씩 가슴에 꽂힌 주사기를 통해 주입하는 시술을 1년 이상 받았다”면서 “암과 투병하면서 저는 모든 집안일을 그대로 했고 먹는 것도 잘 먹어서 그런지 키모를 할 때도 머리카락이 그다지 많이 빠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 씨는 “암에 걸리면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암에 걸린 사람들은 못 먹어서 죽는 것이니까 뭐든지 맛있게 먹으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것이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암 투병 중 결핵이 발견돼 병원에 열흘 감금당하기도 하고 또 패혈증도 걸려 병원에 열흘간 입원하기도 했었다”면서 “암도 걸린 상태에서 패혈증까지 와서 힘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윤 씨는 “2021년 7월 암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판정을 받았는데 만약을 위해 매 6개월마다 CT와 MRI 테스트를 받고 있지만 암 완치 판정을 받은 이후 약은 전혀 복용하지 않았다”면서 “당시 하나님이 살려주시면 사는 동안 하나님 일을 하면서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윤 씨는 요즘 1주일에 한번 요가를 하고 남편과 함께 전국 각지에 있는 내셔널 파크를 하이킹하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텍사스의 빅벤·뉴멕시코의 칼스배드 캐번스·테네시의 스모키·메인주의 아카디아 국립공원 등을 다녀왔다. 요즘은 사는 것이 행복하고 암 투병을 하면서 인생을 한번 되돌아 봤던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고 한다. 윤 씨는 1977년 서울 소재 협성여고를 졸업하고 1978년 20세 때 결혼으로 미국에 도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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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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