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무역적자 해소 최우선… ‘바잉파워’ 활용 美 가스 구매 확대 우선 해법
▶ 美 신정부 호응하고 보편관세 면제·반도체 보조금 유지 등 ‘핵심 이익’ 지키기
▶ 트럼프 ‘콕 집은’ 韓 방위비 인상 요구… “안보·통상 연계 ‘빅딜’ 차원 대응”
"(다른) 나라들이 와서 우리 일자리를 뺏어가고 우리나라를 약탈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백악관 재입성을 확정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7월 공화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자동차 산업을 지키겠다면서 한국, 일본, 독일 등 자국에 자동차 수출을 많이 하는 동맹을 겨냥해 했던 말이다.
무역 적자가 자국 경제를 망친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한국은 미국의 8대 무역 적자국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무역 적자 해소를 위해 보편 관세 도입을 공언한 상황에서 대미 흑자 관리 메시지를 선제적으로 발신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전문가 "대미 무역수지 관리 메시지, 이를수록 좋아"
'관세 맨'을 자칭하는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산 대상 고율 관세를 60%까지 더 높이고, 여타국 상품에도 10∼20%의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는 공약을 핵심으로 걸었다.
보편 관세(universal tariff)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과 교역하는 모든 나라에 일률적으로 매기겠다면서 선거 운동 기간 꺼낸 개념으로 아직 시행 방안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는 부족한 상황이다.
가령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 미체결국의 공산품 수입에 평균 3%의 관세를 매기는데 10%의 보편관세를 매긴다면 10%포인트를 더 높인다는 것인지, 10%까지 상향한다는 것인지, FTA 체결국은 예외인지 등에 관한 권위 있는 해석이 나온 적은 없다.
EU·한국 등 핵심 동맹에도 보편 관세를 매겨 자국 산업과 일자리를 지킨다는 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생각이다.
그는 관세 장벽을 높이면 바이든 행정부처럼 대규모 보조금을 쓰지 않아도 첨단 제조업 기업들이 알아서 자국에 투자할 것으로 여긴다.
미국은 주요 무역 적자국 중심으로 보편 관세를 무기 삼아 통상 압력을 가할 전망이다.
한국은 중국, 멕시코, 베트남, 독일, 아일랜드, 대만, 일본에 이어 미국의 8번째 무역 적자국이다.
한미 FTA가 있지만 트럼프 신정부가 역점을 둔 보편 관세를 막을 방패가 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따라서 한국이 선순위 무역 압박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역대 최대 규모로 커진 대미 무역 흑자 관리 메시지를 조기에, 그것도 선명하게 내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대미 협상에 참여한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난 11일 좌담회에서 "미국이 중시하는 것은 무역 적자를 어떻게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해소하느냐"라며 "미국의 무역 적자를 해소하면서도 한국이 원하는 것을 반영할 수 있는 것을 포함해 패키지로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최우선 의제서 현실적 양보를 해 우호적 협상 기반을 마련하고 보편 관세 면제·완화와 더불어 한국이 양보하기 어려운 '핵심 이익'을 반대급부로 지켜나가는 현실적 접근 방법이 유효하다는 취지다.
트럼프 신정부 진용이 갖춰지는 상황에서 무역수지 관리 메시지는 신속히 나오는 편이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정부 통상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인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7일 연합뉴스에 "이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며 "한국도 상당히 노력해 호응하는 형식으로 선제적으로 가는 게 맞지 그쪽서 먼저 나온 요구를 어떻게 하는지 고민하는 것으로 보여서는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받기로 한 대규모 반도체 과학법 투자 보조금, 이차전지·태양광 기업들 이미 받는 IRA 상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와 관련해서는 최대한 우리 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처지다.
또한 트럼프 신정부 들어 미국의 대중 압박이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 속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 때 어려운 교섭 끝에 받아낸 VEU(검증된 최종 사용자) 자격을 지켜내는 것 역시 만만치 않은 과제가 될 수 있다.
허 교수는 "수용 가능 카드를 정리하고 우리도 요구 리스트를 만들어 논의를 선제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며 "특히 미국의 여러 보조금 문제는 우리 진출 기업에 굉장히 중요해 미 정부가 바뀌어도 정책 연속성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트럼프 관심 집어내 지렛대 활용…한미 경제·안보 관계 새 정립"
대미 무역수지 관리를 위해 미국 에너지 수입 확대 방안이 현실적 해법으로 거론된다.
정부는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3위인 한국의 '바잉 파워'를 활용해 미국 가스 수입을 확대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 중이다.
작년 한 해 한국은 LNG를 360억달러어치 수입했다. 국제 시장에서 한국은 호주, 카타르, 미국 등 주요 가스 수출국들에 '큰손' 고객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추가 경제 부담 없이 LNG와 원유 등 에너지 도입선을 미국으로 일부 돌리는 것만으로도 대미 무역수지 균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침 공기업인 가스공사는 1990년대부터 이어온 카타르, 오만과 연간 총 연간 898만t 규모의 장기 계약을 올해 말로 종료한다. 기존 장기 계약 대비 연간 540만t 물량이 감소해 가스 도입선을 변경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정부 관계자는 "대미 흑자 폭을 완화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나갈 필요가 있다"며 "수출을 줄일 수는 없는 상황에서 수입을 크게 늘릴 수 있는 것은 천연가스, 석유"라고 말했다.
정부는 가스 수입 확대 외에도 도입선 다변화 차원에서 운송비, 비축비 보전 등 방식으로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를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올려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산 에너지 확대 수입 확대는 앞선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에도 일부 진행된 바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 미국산 원유와 가스 수입 비중은 각각 0.2%, 0.1%에 불과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기(2017∼2021년)를 거치며 미국산 원유·가스 도입 비중이 상당 수준으로 늘었다.
작년 한국은 전체 원유와 가스 중 각각 13.5%, 11.6%를 미국서 들여왔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2위 원유 도입국이자 4위 가스 도입국이다.
전통적 정치 지도자가 아닌 '사업가'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고 부르면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크게 올리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라 우리나라는 통상과 안보 양측에서 미국으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통상·안보에 걸쳐 트럼프 당선인의 핵심 의제에서 한국의 일부 양보가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이다. 이에 한국이 통상과 안보 문제를 포괄한 '빅딜'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제언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14일(한국시간) 연합뉴스 1회 미래포럼 강연에서 "트럼프는 비전통적 지도자로 한국이 추구하는 안보 이익과 미국이 추구하는 경제적 이익의 조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트럼프가 관심을 가진 부분을 우리가 잘 집어내고 그것을 지렛대로 활용해 한미 경제·안보 관계를 새롭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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