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을 짓기로 결심하고 완공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집을 완성하는 동안 계절과 절기의 변화에 눈을 떴고, 완공 즈음엔 집을 무대로 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한옥이라는 공간에서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24절기의 풍류를 많은 사람들과 나눠보자는 꿈이었다. 그래서 소모임을 기반으로 한 절기문화 사업을 기획·운영하는 회사 '열두달에피소드'를 차렸다. 4년 동안 집을 짓다가 사업까지 시작한 서울 종로구 체부동 2층 한옥 '한옥 에피소드(대지면적 34.93㎡, 연면적 64.90㎡)'의 집주인 장윤희(46)씨 부부 얘기다.
결혼해서 줄곧 아파트에서 산 부부는 수년 전 외국 주재원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경기 일산에 전세로 들어간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는 아찔한 경험을 한 뒤 평생 살 주택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이왕이면 한옥이었으면 했다.
주택에서 유년기를 보낸 남편은 골목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었고, 외국 생활을 하면서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아내는 언젠가 한옥에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던 터였다. 경복궁, 청와대와 가깝고 한옥이 밀집한 서울 체부동에 당도한 부부는 골목을 샅샅이 뒤져서 23평짜리 땅을 찾았다.
■이토록 혹독한 집짓기
덜컥 땅을 계약하고 한옥 건축 경험이 많은 이문호 건축가(가은앤파트너스 소장)를 만나기까지 모든 일이 수월했다. 4년이란 시간이 걸릴 줄은 건축주도 건축가도 미처 몰랐다. 코로나19를 거치고 작은 에피소드를 겪으며 공사 기간은 한없이 늘어졌고, 시공업체까지 바꿔가며 겨우 완성해 최종 사용승인이 난 것이 지난달이다. “한옥이 아주 천천히 조금씩 완성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쉬운 결정에 혹독한 대가가 따른 거예요. 무작정 달려들었던 저에게도, 오랫동안 주인 없이 방치돼 있던 땅에도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4년은 긴 시간이다. 시간이 길어진 이유는 땅 자체의 제한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옥 보존지구의 비좁은 골목 끝에 위치한 땅은 높은 옹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정면은 맞닿은 앞집 한옥이 출입구를 막고 있는 구조라 공사에 어려움이 따랐다. 면적에도 오차가 심해서 이웃 건축물과 물린 땅이 없는지 측량도 다시 해야 했다. 새 집의 터 잡기를 지켜보던 이웃 주민이 같은 건축가에게 맡겨 집을 새로 짓겠다고 선언하면서 시간이 다시 지체됐다. 규제나 인허가가 복잡한 좁은 땅에 2층 한옥을 나란히 지으려니 공사 난도와 비용이 올라갔다. 자잿값은 치솟았고, 인부는 부상을, 건축가는 송사를 당하는 등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여러 번이었다. “집을 지을 팔자가 아닌데 괜히 무리해서 일을 벌인 게 아닌가 후회가 몰려왔어요.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인 집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우울했는지 몰라요. 공사 기간 중에 잠깐 살기로 한 전셋집 계약을 세 번째 연장했으니까요. 로망이었던 한옥이 아니었으면 중도에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포기하지 않고, 밑그림을 그리다
기약 없이 미뤄지던 공사는 시공 업체를 바꾸면서 속도를 냈다. 매일 전셋집과 현장을 오간 윤희씨는 대목과 인부들을 직접 만났다.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나무를 함께 보러 다니고 재료의 내력을 살피면서 모든 공정을 빠짐없이 들여다보았다. “현장에서 사계절을 4번 겪으면서 절기의 변화를 자각하게 됐어요. 한옥의 주재료인 나무는 온도와 습도의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언제 추워지고 더워지는지를 잘 살펴 건축 시점을 잡는 것이 한옥 건축의 핵심이더라고요. 집을 짓는 것도, 사는 것도 결국 자연의 흐름 안에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렇게 체득한 24절기는 전직 디자이너인 윤희씨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잊힌 절기문화를 찾아내 더 많은 사람과 나눠보고 싶던 찰나, 그 공간으로 한옥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건축가는 23평 대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층 한옥을 제안했다. 장씨 부부와 아들까지 세 식구가 쓰기엔 좁은 면적을 1층에는 공유 공간인 부엌과 거실, 2층에 사적 공간인 방을 배치하는 것으로 극복한 것. 2층 가정집으로 완성돼 가던 집은 윤희씨의 꿈이 무르익으며 조금씩 바뀌었다. 세 식구의 입주를 미뤄 두고 한옥에서 '절기'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 사업부터 해보기로 방향을 잡았다. 이 소장은 “방이 필수인 주택에 공용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여러모로 딜레마가 있었다"며 “2층을 방 없이 오픈하되, 방 하나는 미닫이 문을 달아 필요에 따라 열고 닫을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단열에 취약한 지붕을 보강하고 목구조를 드러내 최대한 층고를 높였다. 드러난 구조에 간접조명을 달고, 계단에는 유리 난간을 달아 개방감을 키웠다. “한옥은 기둥으로 이뤄진 구조이기 때문에 어떤 배치든 포용할 수 있고, 쓰임에 따라 얼마든지 공간을 만들고 없앨 수 있지요."
“한옥을 짓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었지만 결국 큰 선물을 받았어요. 막연하게 꿈꿨던 일들이 구체적으로 잡히기 시작했으니까요." 포기하지 않고 한 땀 한 땀 지은 집이 절기문화를 펼쳐 보일 무대가 됐다. 윤희씨는 24절기를 주제로 때마다 모임을 조직해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벌이는 1인 기획사를 꾸렸다. 세 식구의 보금자리가 될 운명이었던 한옥이 4년의 담금질을 거쳐 예술기획자의 사무실 겸 문화 공간으로 변신한 것이다. 유료로 운영되는 소모임에선 국악, 한식, 공예 등 전통 분야에 종사하는 예술인과 협업한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다. 집이 예술가들의 무대이며, 문화를 나누는 라운지가 된 셈이다.
“절기는 계속 돌아오니 콘텐츠는 무궁무진해요. 그 공간의 중심이 바로 이 집이고요. 언젠가 이 집에 살림을 차리게 되겠지만 당분간은 집이 이끌어준 대로 문화예술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삭막한 도시생활 속에서 잠시나마 자연을 느끼고 절기에 맞는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장소, 그게 우리 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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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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