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이 되면 문득 흥얼거려 보는 노래가 하나 있다. 나이 들면서 하강속도가 빨라져버린 기억력의 끈을 툭 끊고 튀어나오는 한 소절의 노래가 참 뜬금없다. 허술한 햇빛이나 메마른 바람이 부는 이월의 풍경과 연계되어 찾아오는 것 같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되는 졸업식 노래이다.
윤석중 작사의 이 노래는 중년 이후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노래이다. 각 학교의 졸업식은 이월의 말미에 치러졌다. 바람의 악기인 풍금의 전주가 흐르고 나면 첫 절은 재학생이 부르고 두 번째 절은 졸업생이 불렀으며 마지막 절은 함께 불렀다. 여지없이 눈물이 동반되는 노래였다.
내가 졸업한 작은 산읍의 초등학교에서는 그 졸업장 하나가 유일한 것인 아이들도 많았다. 냇물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마지막 소절은 어린아이들에게 추상적인 가사로 여겨졌다. 다시 만날 수 없으리라는 뜻으로 풀이되었다.
졸업장 하나를 돌돌 말아 쥐고 우리들은 헤어졌다. 이별이 무엇인지 이별의 인사는 어떻게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아이들은 학교 앞 삼거리에서 열없는 표정으로 헤어졌다. 아니 흩어졌다는 말이 맞을 거다. 몇몇은 나와 함께 냇물 건너 들판길로 접어들고 더러는 신작로를 따라 더 걸어가다 이쪽 저쪽 산기슭이나 들판으로 나뉘어 갔다. 한참을 걷다가 들판을 훑어보면 저 멀리 친구들의 모습이 가뭇이 멀어져가는 게 보였다.
일곱 살의 나는 초등학교 교사이신 아버지를 따라 그 산읍으로 갔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고요한 동네였다. 풍경과 풍경 사이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 물 따라 조붓한 길들이 따라다니는 곳이었다. 발바닥 밑으로 납작한 질경이가 밟히던 그곳에서 내 감각의 원초가 만들어지고 지각의 뿌리가 내려졌다.
삶은 무수한 사라짐 위에 세워지는 것이었지만 그 들판이나 초가들이 만든 풍경은 내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제 그 흙길도 초가도 거기 없다는 것을 확인했는데도 여전한 풍경으로 남아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사해 간 읍내는 백마강이 휘돌아 나가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강물이 흘러 바다로 가듯 도시로, 다시 더 큰 도시로 옮겨가며 살던 나는 마침내 태평양 건너의 땅으로 옮겨와 늙어가고 있다.
몇 년 전 내게 냇물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는 일이 일어났다. 그때도 이월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바느질하는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가 나간 직후이기도 했다. 겨울 저녁나절의 성근 햇빛을 등에 지고 낯선 사람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왔다. 몇마디 대화가 오가면서 느린 말투와 단조로운 억양으로 보아 충청도가 고향이라는 것 정도는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고향과 나이를 묻는 우리네 촌스런 정서의 수순을 밟았다. 나이와 동네 이름이 밝혀지는 순간 끼익, 하고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완행버스 한 대가 두 사람 앞에 멈추어 섰다. 묻고 대답하는 사이 그 버스는 기억의 공통분모를 모터 삼아 덜컹거리며 산모퉁이를 끼고 내달렸다. 겨우 한 학년에 두 반뿐이었던 그 산읍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같이 공부한 동창이었다. 무채색의 이월 들판에서 왼쪽 풍경으로 점점이 멀어지던 친구였다. 말수가 적던 친구였다. 반백 년이 지나 만난 초로의 두 아줌마는 서로의 얼굴이 낯설어 갸우뚱거리며 쳐다보기를 반복한 뒤 껴안았다.
그날 이후 친구와 나는 같은 천장 밑에서 일을 하며 마저 늙어가고 있다. 친구는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올라가 열세 살부터 바느질을 배우기 시작했다. 손으로 하는 스티치가 재봉틀보다 더 섬세하다. 친구는 영어 대신 따뜻한 미소와 손짓으로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늘 고개 숙이고 앉아 손님에게 맞는 사이즈로 변형시켜 주고 한땀 한땀 정교한 솜씨로 옷의 상처를 매만져 주는 일에 행복해 한다.
오전 일과가 끝나고 나면 같이 점심을 먹는다. 조개탄 난로에 덥힌 밥을 먹은 뒤 오십 년만에 다시 나눠 먹는 밥은 달고 재미지고 눈물난다. 솜씨 좋은 친구는 맛난 반찬을 내 밥 위에 얹어주며 전설따라 삼천리에 버금가는 유년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는 누구나 처음에는 냇물의 시간을 살았을 것이다. 도돌이표처럼 맴도는 송사리떼가 살던 냇물은 바닥을 내보이며 흘러가는 순한 물길이었다. 큰비가 내리면 길을 잃기도 했지만 물풀에게 말 걸고 돌멩이들에게도 길을 내주며 돌돌돌 소리 내며 흘러갔다.
돌이켜보면 삶은 좁은 냇물이 더 큰 물살에 합해져 강이 되었다가 향방 모를 바다로 가는 여정과도 같은 것이었다. 강은 깊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냇물들이 싣고 온 저마다의 기척을 가라앉치며 흘러갔다. 마침내 다다른 넓은 바다는 서로 다른 물끼리 이입되어 개별성을 잃어버린 채 뒤척이는 곳이었다.
지금 나는 하루에 한번씩 하늘과 맞닿은 경계에 석양의 붉은 위로가 내려앉을 뿐인 무료한 바다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이 그리우면 가끔 해안으로 밀려가 무언가에 부딪쳐 포말을 만들어 본다. 농담처럼 산 중턱으로 내려앉는 산안개나 빗줄기 같은 시원을 상상해 보며 하늘 가장자리로 하얀 포말을 쏘아 올려 본다.
다시 이월은 찾아왔고 차갑고 마른 바람이 불고 있다. 며칠째 떠나지 않고 맴을 도는 저 바람은 혹여 반백 년 전 그 들판에서 우리의 머리칼을 지나간 그 바람이 아닐까? 두 줄기 냇물이 다시 만났다는 풍문을 듣고 찾아온 걸까? 헐거운 저녁 햇빛이 안녕을 고하려는 시각, 오늘도 친구는 돌돌돌 그 속내 깊던 냇물 소리를 흉내내며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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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미 워싱턴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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