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캘린더를 정리하다보니 올해 2월에 좋은 공연과 전시의 개막이 많이 몰려있다. 보통 2월은 건너가는 달처럼 겨울과 봄 사이에 슬쩍 걸친, 열두 달 중 꼬리가 제일 짧은 달인데 올해는 그 안에 다채롭고 흥미로운 행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때로 공연 리뷰를 쓰고 나면 “미리 알려주지” “진즉 알았으면 나도 갔을 텐데…”라며 아쉬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기에 놓치기 아까운 예술행사들을 추려보았다.
천재적 안무가로 추앙받는 오하드 나하린(Ohad Naharin)과 이스라엘의 ‘바체바 댄스 컴퍼니’(Batsheva Dance Company)가 2월14~16일 뮤직센터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 온다.
오하드 나하린이 이끄는 바체바 무용단은 전통발레와 현대발레, 모던댄스의 모든 테크닉을 초월한 인간 본연의 몸짓으로 현대무용계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춤 공연단이다. 나하린은 자신이 ‘가가’(Gaga)라 이름붙인 때 묻지 않은 몸 사위, 본능적인 움직임, 자유로운 춤의 언어를 기본으로 안무한 독창적인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의 특이한 족적은 다큐멘터리영화 ‘미스터 가가’(2015)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현재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5부작 춤다큐 ‘무브’(Move)에서도 2부에서 나하린과 바체바 무용단을 소개하고 있다. 춤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번 무대에서는 2022년작 ‘모모’(MOMO)를 미국 초연한다.
같은 주말 바로 이웃한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13~16일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협주곡을 파보 야르비 지휘의 LA필하모닉과 4회 협연한다. 조성진은 라벨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피아노독주 전곡과 피아노협주곡 2곡을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했는데 이를 실황으로 들려주는 순회연주를 올 한해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여러 공연장에서 계속하고 있다. 13일 연주 후에는 CD음반 사인회도 갖는다.
뮤직센터 캠퍼스의 또 다른 이웃 아만슨 극장에서는 지난 8일 ‘스티븐 손드하임의 옛 친구들’(Stephen Sondheim’s Old Friends)이 개막돼 오는 3월9일까지 공연된다. 2021년 타계한 뮤지컬의 거성 손드하임을 기리는 공연으로, 캐머론 매킨토시와 함께 만들었던 뮤지컬의 히트송들을 모아 들려주는 화려한 갈라 콘서트다. 주디 덴치, 버나데트 피터스, 리아 살롱가 등 기라성 같은 왕년의 스타가수들이 총출연하는 이 공연은 원래 2022년 런던에서 단 1회의 추모공연으로 기획됐지만 대히트하자 2023년 매튜 본이 감독한 새로운 뮤지컬로 거듭났다. 미국 초연으로 뮤지컬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머스트씨 공연이다.
할리웃의 팬테지스 극장에서는 연극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Harry Potter and the Cursed Child)가 15일 개막된다. 원작자 J.K.롤링과 잭 손, 존 티파니가 대본을 공동집필한 연극으로, 책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로부터 21년 후 포터의 아들 세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해리 포터 8편이라 해도 좋을 작품인데, 소설책으로는 출판되지 않았으나 팬들의 성화로 얼마 전 대본집이 1부와 2부로 출간되었다.
이 연극은 2016년 초연된 후 로렌스 올리비에상 9개 부문, 토니상 6개 부문 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배우들의 호연과 흠 잡을 데 없는 연출에 호평이 이어졌다. 특히 각종 마법이 잘 연출되어 마술쇼를 보는 듯한 장면도 적지 않다고 한다. 연극은 6월22일 계속된다.
한편 2월은 ‘아트페어의 달’이다. 19일부터 23일까지 닷새 사이에 5개가 넘는 미술제가 남가주 곳곳에서 열린다. LA가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부상한 지는 오래됐지만, 갑자기 2월에 아트페어가 몰리는 현상은 2019년 프리즈(Frieze)가 LA에 진출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프리즈는 아트바젤(스위스), 피악(프랑스), 아모리쇼(뉴욕)와 함께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국제 아트페어의 하나다. 2003년 런던에서 시작돼 빠른 속도로 성장한 프리즈는 2012년 뉴욕, 2019년 LA, 2022년 서울에 진출하면서 글로벌 미술장터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프리즈가 열리는 곳에는 세계 10대 갤러리로 꼽히는 가고시안, 하우저앤워스, 데이비드 즈위너, 페로탱, 페이스, 화이트 큐브, 리만 머핀 등 날고 기는 화랑들이 최신작품을 싸들고 참여하기 때문에 현지 미술계는 흥분과 열기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따라서 프리즈가 LA에 오기 전에는 1~3월에 산발적으로 열리던 로컬 아트페어들이 5년 전부터 모조리 프리즈와 같은 주말로 행사를 몰기 시작했다. 프리즈를 보러 오는 국제 미술계 인사들이 때로는 다른 아트페어들을 돌아보기도 하므로 그 후광 아래 부스러기라도 주우려는 눈물겨운 노력이다.
프리즈LA 2025는 20~23일 산타모니카 공항에서 열리며 96개 유명 갤러리가 참가하는데 한국서는 갤러리 국제, 조현, 티나김이 부스를 연다. 19~23일 LA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는 LA아트쇼에는 120개 갤러리가 참여하며 한국 갤러리는 아트 인 동산, 아트플러스, EK, 아트월, 투스톤즈, 월드, KMJ, J&J, 스캇 앤 제이 등 10여 곳이 작품을 건다.
이 외에도 펠릭스, 디 아더 아트페어, 스프링/브레이크LA 등이 같은 기간에 미술장터를 연다. 현대미술의 최전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종합적으로 가늠하기 좋은 벼락시장들이고 대부분 수익금의 일부를 산불 재해기금으로 기부한다고 하니 관심을 갖고 둘러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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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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