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도들도 핵을 가지고 있다. 유대교도 가지고 있다. 이제 힌두교도들도 핵을 가지고 있다. 왜 우리 회교도들은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인가’-. 60년 전 줄피카르 알리 부토 당시 파키스탄 외상이 핵 개발선언과 함께 한 말이다.
같은 외침이 오늘날에도 되풀이 되고 있다. 표현방식에 다소간 차이가 있지만.
‘우라늄 농축(핵무기 추구의 다른 말)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국가적 자존심이자 주권의 상징이다’- 이란의 시아파 회교 혁명정권의 선언이다.
그 선언이 그렇다. ‘이란의 우라늄 농축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과 맞부딪치고 있다.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에서도 그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란은 핵무기를 추구하는 행위를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permanently and verifiably) 중단해야한다. 이란은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영원한 적이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는 말로 여운을 남기긴 했다.
그러나 핵심쟁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회교혁명정권 이란에게 핵 추구는 국가 자존심이, 더 구체적으로 체제안위가 걸려 있는 문제다.
그러나 ‘두 번째의 회교도, 특히 시아파 근본주의자의 핵’은 미국으로서는 악몽 그 자체다. 그리고 다른 한편 중동지역, 더 나가 서방세계 안보와 핵 비확산 체제의 중요한 시험대로도 여겨진다.
9.11사태, 뒤이은 이슬람 공화국(IS)의 발호를 통해 이슬람이스트 근본주의 세력의 극도로 잔인한 비인도적 행태를 서방은 생생하게 경험했다. 이란의 핵무장과 함께 그런 반(反)문명적 집단에게 핵무기가 흘러든다. 상상조차 끔찍한 시나리오다.
그런데다가 이란이 핵무장을 하는 날이면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수니파 회교 국가들도 모두 핵개발에 나서게 된다. 핵도미노 현상이 일게 되는 거다. 아마 그 전에 이스라엘이 공격에 나설지도 모른다. 그 정황에서는 미국도 말려들 수 있다. 그러면 중국, 러시아는….
상황이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번질 수 있는 것이다. 묘책은 없는 것인가.
‘이란 회교공화국 체제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경제는 무너졌다. 반정부 기류는 날로 확산되고 있다. 국제적으로 고립됐다. 회교혁명 정권 이란의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이는 if의 문제가 아닌 when의 문제로 보인다.’ 아메리칸 컨서버티브지의 지적이다.
회교혁명 46년을 맞고 있는 오늘 날 민심은 완전히 돌아섰다. 2022년에 실시된 한 주요조사 에 따르면 이란 국민의 90%는 거버넌스 시스템으로서 회교공화국을 지지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거기에다가 73%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원하고 있고 회교공화국의 신정(神政)정치 그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반면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요구는 날로 높아가고 있다. 그 가운데 여성권리 주창자를 비롯해 학생, 노동자, 세속적 공화주의자, 소수민족, 심지어 전통적 종교집단에 이르기까지 반정부 움직임은 전 계층, 전 지역으로 파급, 확산되고 있다.
히잡 착용문제와 관련, 종교경찰의 가혹행위로 숨진 마흐사 아미니사건으로 촉발된 전국 규모의 ‘2022-2023 여성, 생명, 자유’저항운동은 바로 이 같은 분위기에서 발생한 것이다. 회교 율령에 따른 전근대적 억압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출한 것이다.
‘국가와 사회와의 간극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개혁도 안 통하는 상황에 이르면서 이란 국민은 시아파 회교 신정 체제 생존에 최대 위협이 되고 있다.’ 이어지는 진단이다.
무엇이 이런 상황을 불러왔나. 무너진 경제가 한 원인이다. 2023년 한 해 동안 인플레이션은 40%가 넘었다. 청년 실업률은 20%가 넘고 툭하면 벌어지는 것은 단전에, 단수 소동이다.
은행에서, 석유, 건설, 텔레커뮤니케이션에 이르기까지 이란 경제의 거의 대부분을 독점, 통제하고 있는 것은 정부위에 군림하고 있는 이란혁명수비대다. 이 군-경 독점체제는 마피아식 통치모델을 구축, 혁신을 거부하면서 그나마 민간경제의 숨통마저 틀어막고 있다.
선거는 하나마나 한 요식행위다. 회교혁명정권에 반기를 든 사람은 출마 자체가 봉쇄된다. 그런 식으로 실시되는 선거의 실제 투표율은 20% 정도로 냉소주의만 만연한 게 이란의 정치 기상도다.
이란은 ‘저항의 축’(하마스,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이라크 민병대 등)을 거느리며 한동안 중동 아랍 권에서 패권적 파워를 과시해왔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테러공격을 기점으로 상황은 반전됐다. ‘저항의 축’은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모두 궤멸 됐다. 급기야 이란 본토까지 이스라엘의 공격에 방공시스템이 초토화되는 등 망신을 당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심각한 내우(內憂)에 외환(外患)을 겪고 있다고 할까. 이 모든 정황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이, 그 기회가 온 것 같다.’ 이란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를 서방은 진지하게 고려할 때가 됐다는 게 내려지는 결론이다. 절대 다수의 이란 국민이 바라고 있는 것도 민주화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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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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